2022. 6. 21. 17:55ㆍTo be a Game Changer/Quiet Time(삶의 예배)
기독교와 주식 투자. 일반인은 이게 뭐 싶을 수도 있지만, 많은 크리스천은 본인이 주식 투자를 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종교와 주식 투자는 배척되지는 않지만 다만 우선순위의 문제, 다시 말해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식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이 문제가 다룬 영상이 있는데 너무나도 흥미롭게 봤고 많은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 돈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땅에 파묻어 놓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고 돈을 불린 종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돈을 가만히 두는 것보다 투자를 하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 아닌가요? 크리스천은 주식 투자를 해도 될까요? (전 늘 부정적으로 생각해왔습니다)"
필자 또한 위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해봤지만, 성경적으로 부를 해석하기 위해 달란트 비유를 들고는 했었다. 주변의 크리스천 또한 달란트 비유를 언급하며 부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해석하고는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달란트 비유를 주식 투자와 경제적 번영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실은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고 김학철 교수는 말한다. 그렇다면 투자나 부에 대해 다루는 성경 구절은 뭐가 있을까? 관련된 부분은 전도서 11장 1절과 2절인데 흥미롭게도 개역개정 성경과 새번역 성경에서 다르게 표현하고 있기에 한 번 살펴보자.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나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어라
- 전도서 11장 1~2절 (개역개정)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투자할 때에는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여라
- 전도서 11장 1~2절 (새번역)
위 성경 구절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결국 '재물과 소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문제에 이어진다. 전도서 11장 1절과 2절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선 성경이 부와 소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우리에게 말해주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주식과 같은 투자를 하는 이유가 남기고 싶어하고 이는 결국 부를 축적하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에 관한 관점을 성경에서 명확하게 찾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부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측면으로 나누어 보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
부와 소유를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본다. 대표적으로 출애굽기를 보면 광야의 사람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주겠다'고 얘기한다. 결국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켜 하나님을 따르는 결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와 번영, 그리고 소유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결과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라면 우리는 부와 소유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잠언의 말씀을 통해 부를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보기도 한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 잠언 6:10 - 11
하나님께서는 노동에 대해 권면을 하고 이것이 결국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는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결국 부와 소유를 가진 풍요로운 삶을 가진 사람은 노동에 대한 결실(또는 대가)이다. 마지막으로 부와 소유를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에 복을 내려주기에 부는 좋은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하나님을 믿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본인이 가진 것을 나눠주면 하나님은 다시 부자에게 복을 내려주고, 가난한 자는 부자 덕분에 필요를 해결하게 된다. 결국 이 3가지 측면에 기반하여 부와 소유에 대해 성경은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는 부와 소유에 대해 경고하고 경계하는 부정적인 측면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
먼저 부를 사람이 우상 숭배하도록 만드는 원천이라고 본다. 구약 성경에 보면 많은 이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 숭배, 즉 우상 숭배한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 봐서 여기서 말하는 바알은 무엇일까? 바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풍요의 신이다. 즉,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풍요를 좇아서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를 경고한다.
이스라엘 자손이...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 삿 3:7-8
자연스럽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와 소유는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매우 유혹적이고 위험한 존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재물 또는 부 등을 상징하는 맘몬이라는 것도 나오는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맘몬을 섬기게 되자 예수는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한 부와 소유를 부정의의 결과라고 본다. 누군가의 소유를 잘못된 방식으로 편취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문제점을 저울추에 비유(신명기 25:15에서 바르고 확실한 저울추를 사용하라고 말씀)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걸림돌이다.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냐고 물어보자 그에 대해 예수는 답한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 마가복음 10:25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니 부와 소유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며 강력한 경고 또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위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부와 소유를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해석한다.
정리하자면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부와 소유란 하나님의 축복, 정직한 노동의 대가, 부를 나누면 복을 받음이고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우상숭배, 부정의의 결과, 예수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 김학철 교수는 부와 소유에 관해 성경은 어떻게 보면 계속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부와 소유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몇 가지 결론은 도출이 가능한데 우선 부와 소유에 대해 성경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쪽 면만 강조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청빈과 금욕만으로 누군가 또는 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부에 대한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인 이야기 모두 내포된 내용이 있다. 첫 번째,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도우라. 누군가의 고통과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하는 행위는 성경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된다. 다만 동시에 두 번째로, 이 가난이 부정의한 제도로부터 왔는지 살피고 그 제도를 보완하라. 이것에 대해 김학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성경은 불공정을 해결할 제도를 말하고 있어요. 희년 제도도 말하고 있고요, 안식일 제도도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부와 재산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으로 말하는 두 본문 모두 가난한 사람을 돕되 한 사람이 가진 따뜻한 자선의 마음과 더불어 그 사회가 부정의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그 제도 자체의 개선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성경의 주요한 메시지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농구를 예로 들어보자면 농구는 어떻게 보면 단순히 공을 동그란 곳에 집어넣는 행위다. 다만 농구가 인기 있는 미국을 보면 미국 프로농구인 NBA의 유명 선수들은 몇백억대의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농구가 전혀 인기 없는 곳에서 농구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 한들 그 사람은 단순한 취미로 할 뿐이지 부와 명예를 얻지 못한다. 이것은 한 사회의 부와 명예, 그리고 재산은 사실 그 사회의 시스템이 결정해주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한 사회의 소외된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무능력함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학철 교수는 말한다.
이어서 세 번째,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라. 우리가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부를 누리는 것이 나의 뛰어난 아이디어와 노력의 결과이기만 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난 참 운이 좋았어'와 같은 표현을 설명할 수가 없다. 물론, 운과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실력과 기술을 갈고닦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을 준비해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성공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시대와 그 사람의 역량이 맞은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순위가 뒤바뀌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부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 그리고 부정적인 측면 모두 하나님을 중심에 놓으라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와 소유는 도구적 가치임을 잊지 말라고 얘기한다. 이것이 필자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친구와 함께 노트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와 꿈,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지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4년 뒤 필자 주변 친구와 형, 누나를 포함한 50여 명에게 각자의 소원을 3가지씩 물어보고 이를 정리하여 여러 가지 생각과 함께 SNS에 공유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 필자는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전 포스팅에서 꿈에 대해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꿈과 선망의 대상임을 잊지 말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며 다른 이 또한 꿈꾸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북돋는 삶이 필자의 꿈이다. 이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도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즉,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중 하나가 바로 부(돈)라는 것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도구가 있겠지만 먼저 떠오른 것은 돈이었다. 그것이 실질적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돈이 인생의 모든 욕구를 해소하는 등의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돈이 없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지 알기 때문에, 동시에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돈의 중요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부와 관련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며 감사하게 살아가되 우선순위가 바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필자는 주식 투자를 하며 얻은 이익 일부를 헌금하는 십일조와 부와 신앙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학철 교수님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말을 하는데, 그는 우리에게는 궁극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부와 재산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 위한 도구적 가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궁극적 가치이며 재산은 도구적 가치라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는 목적과 수단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한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은 또 무엇인가? 동시에 목적과 수단이 바뀌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다양한 얘기를 하고 영상은 다시 첫 번째 질문인 크리스천이 주식 투자를 해도 되느냐로 돌아온다. 이에 김학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싶다고 밝힌다.
어느 회사 주식을 사려고 하십니까?
투자라는 행위를 부정할 수 없지만, 어느 회사 주식을 사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투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러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투자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깨끗한 지구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전기차를 생산하여 이를 현실로 다가올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회사에 투자함으로써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기업에 투자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느 회사 주식을 사려고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주식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스스로 묻는다. '나는 무슨 주식을 사려고 하는가? 왜 사려고 하는가? 그래서 이익을 얻으면 무엇을 위해 쓰려고 하는가?' 어떤 주식을 왜 사려고 하며, 어떤 삶을 꿈꾸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투자하고 결실을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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