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 16:47ㆍTo be a Game Changer/Quiet Time(삶의 예배)
십일조는 자기 소득이나 재산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득이 있으면 그중 10분의 1을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헌금을 한다. 하지만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읽다 보면 이 십일조에 대해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온전한 십일조는 무엇인가? 오늘은 필자가 좋아하는 신앙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인 '잘잘법(잘 믿고 잘 사는 법)'의 김학철 목사님의 영상을 정리해보겠다.
우선 십일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처음 성경에 나온 구절을 보면 된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십일조라는 개념을 다룬 것은 창세기 14장 20절 말씀인데 아브라함이 전쟁을 치르고 멜기세덱이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에게 자신의 재산의 10분의 1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또한, 창세기 28장 22절에서는 야곱이 하나님에게 십일조를 서약한다.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 2가지의 구절에서 드러나는 십일조의 정신은 "나의 삶과 재산은 내 능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내 삶과 내 재산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며 일종의 증거로 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십일조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떻게 활용이 되며,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며 돈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십일조가 필요 없고 그 십일조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난다. 하나님의 뜻과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학철 교수님은 구약 성경으로 따져보았을 때 십일조의 정신에는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헌신을 향한 십일조(또는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십일조)다. 민수기 때에는 성전이 있기 전이라 회막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장에게 제물을 바쳤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제물을 관리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나머지를 가지고 자기의 삶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제사를 돕는 레위의 자손들에게는 생산수단인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여 이들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국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물이 쓰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오늘날의 개신교 목회자는 제사장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아니기에 예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목회자도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헌신한 사람들을 위한 십일조에서 '헌신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이어지는 질문으로 그럼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는 또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은 바로 정의, 자비, 신의,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인데 이러한 것들을 공공 영역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분들을 위해 모으는 십일조, 이분들을 위해 쓰이는 십일조가 바로 헌신을 향한 십일조다.
둘째, 축제를 향한 십일조다. 다음은 신명기 14장 22절에서 27절에 있는 말씀이다.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신명기의 22절과 23절을 통해 우리는 십일조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재산의 10분의 1을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다. 결국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주님 앞에 십일조를 바치고 그것을 먹으라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24절부터 26절의 말씀이다. 예루살렘 성전까지는 너무 먼, 그렇게 먼 곳에서 살면 포도주와 기름 등을 가지고 가다가 상할 수가 있기에 그것에 해당하는 것을 돈으로 바꿔서 그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사 당신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즐겁게 먹으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부분이 필자에겐 정말 인상 깊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십일조의 개념과 달랐기 때문이고 신기하게도 필자가 추구하던 십일조의 방향과 비슷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필자는 십일조란 헌신하는 분(목사님, 선교사님 등)들께 드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득의 10분의 1을 주변(가족과 교회)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까지 아우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이러한 십일조, 즉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것을 배우는 십일조가 축제를 향한 십일조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방법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대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그분을 인정하고 나와 내 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돌봐주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삽니다"라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음식들을 앞에 두고 즐겁고 행복하게 먹는 것이다. 그런데 27절에 아주 멋진 말이 있다.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십일조의 일부를 그분들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전부 다 먹는 것이 아니라 몫의 일부를 레위인들을 위해 따로 비축하거나 따로 떼어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축제를 위한, 축제를 향한 십일조다.
셋째, 돌봄을 향한 십일조다. 다음은 신명기 14장 28에서 29절까지의 말씀으로 3년마다 걷는 십일조에 대해 다룬다.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기서 '거류하는 객'이란 다른 성경에서는 떠돌이, 외국인 등으로 표현을 한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난민'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난민은 남의 땅에 가서 살게 된 사람이다. 남의 땅에 가서 살게 되었다는 것은 권리가 없다는 뜻이고 이는 다른 이들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권리가 박탈되는 등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인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십일조를 통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후 말하는 '고아와 과부'는 구약 성서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경제적 약자를 의미한다. 이들을 성 안에서 배불리 먹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십일조의 정신이다.
최종적으로 정리를 하면 십일조란 3가지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헌금하고 재산의 10분의 1을 바쳐서 하나님의 가치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위한 십일조. 하나님 공경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러한 공경 속에서 우리의 삶에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를 축제로써 기뻐하는 사람들을 위한 십일조. 마지막으로 우리가 같이 사는 권리를 잃고 고통을 당한 사람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고 배불리 먹이기 위한 십일조.
이러한 십일조의 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근본을 잊은 채 하는 십일조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 자비, 신의의 정신을 버리고 십일조만 하는 것은 자기의 의만 세우는 일이 된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1장 42절에서 이러한 껍질만 남은 십일조의 행위를 비판한다.
42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기존의 십일조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간을 통해 십일조에 대해 의문도 가져보고 스스로 생각하며 온전한 의미의 십일조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결국 십일조란 십일조의 정신을 가지고 정의, 자비, 신의를 실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다. 위에서 말한 헌신한 사람들, 축제, 돌봄을 위한 십일조의 정신이 한국 교회에서도 살아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 이 나라에서 정의, 자비, 신의를 행하고 그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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