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6:3-5 '이스라엘아 들으라'

2022. 1. 18. 15:48To be a Game Changer/Quiet Time(삶의 예배)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표현을 듣자마자 '쉐마 이스라엘'이 떠올랐다. 혹시 '쉐마 이스라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가? 여기에서 '쉐마'는 '듣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샤마'의 명령형이고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이스라엘을 칭한다. 즉 '쉐마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표현으로 해석이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유대인들의 경우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있어서 첫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는 히브리어로 베레쉬트('태초에'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다. 그러므로 '쉐마'는 신명기 6장 4절부터의 내용을 지칭한다.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

 

 더군다나 이번 설교의 제목이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자주 부르는 노래의 제목 또한 '쉐마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독교 대학교를에 다녀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관련 수업을 듣고는 하는데 그중 하나가 히브리어 수업이었다. 매일 수업의 시작과 끝을 히브리어 노래로 장식하였던 수업이었는데 그곳에서 불렀던 노래의 제목이 쉐마 이스라엘이었다. 실제로 첫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שמע ישראל יהוה אלהינו יהוה אחד'

 

 '이게 뭐야??' 싶겠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필자 또한 처음 히브리어를 접했을 때 정말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읽어보자면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부터 읽는다. 위 문장을 한국어로 표현하면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에하드"이고 이를 해석하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는 뜻이 된다.

 

 다시 돌아와 덕분에 이번 설교는 굉장히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설교의 말씀, 신명기 6장 3절에서 5절이다.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화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히브리어로 '듣다'를 의미하는 '샤마'는 사실 뜻이 무려 3가지나 있다. 첫째,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말 그대로 '귀 기울여 듣는다'에서 말하는 '듣다'의 뜻이다. 둘째, 이해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난 영어를 들을 수 있어"에서의 '듣다'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는 "엄마 말 잘 들어"에서 말하는 '순종하다'라는 뜻이 있다. 무언가를 듣고 그대로 잘 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동시에 듣는다는 것과 관련된 한국 표현으로는 불청, 경청, 그리고 청종이 있는데 불청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경청은 상대방을 이해해주면서 잘 듣는 것을, 그리고 청종은 잘 듣는 것을 넘어 실제로 행동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라고 말이다. 그분의 말씀을 불청하는가? 경청하는가? 아니면 청종하는가?

 

 1. 불청

 

 우리가 흔히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순종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도 불청,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씀하셨지만 벽창호(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 같이 결단코 듣지 않았던 이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시편 81편 11절을 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시 81: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얼마나 듣지 아니하였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표현했겠는가. 이후에는 예레미아 선지자가 직접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얘기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을 뿐만 아니라 등을 돌리기까지 했다. 이는 예레미아에 잘 나와 있는데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렘 6: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렘 7: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듣고 있었는가.

 

 결단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 70년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재건을 이끌었던 느헤미야는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고통받았던 건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이후부터 마태복음까지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침묵하신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세례 요한의 시대때부터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나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정말 말을 듣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한마디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데, "과연 이스라엘 사람들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정녕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순종하였습니까?"라고 하시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아니 최소 필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숱하게 많이 선포되고 영적인 리더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많이 들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귀찮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의 집합체인 성경을 제대로 일독도 못한 게 필자다. 정말 많이 반성할 수 있는 말씀이었기에 인상 깊었었다.

 

 2. 경청

 

 이제는 불청의 다음 단계인 경청이다. 경청의 사전적인 의미는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의미하는데, 시편 78편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시 78: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에서 '귀를 기울일지어다'는 본인의 말에 경청하라는 의미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즉 경청한 느헤미야와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멋있게 묘사되어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함께 보자.

 

느 8: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느 8: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 8: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수동적인 의미의 '듣기'가 아닌 능동적인 의미의 '듣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이스라엘 이들은 '아멘'을 위치며 '경청'을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영적인 경험을 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롬 10:17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며 귀를 기울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해하는 온전한 시간을 그분에게 쏟기를 바란다.

 

 3. 청종

 

 마지막으로 '이르는 대로 잘 듣고 좇아간다'를 의미하는, 경청의 다음 단계인 '청종'이다.

 

신 27: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6장에서 우리에게 본인을 따르지 않을지, 청종할 것인지 제안을 하신다. 사실 여기에서 신기한 것이 있었는데 필자는 '청종'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성경에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것인지 말 것인지 물어보는 내용이 있다니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돌아와, 위의 말씀을 통해 결국 하나님께서는 본인의 말씀에 경청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로 순종하며 행하는 그런 '청종'의 자세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기뻐하시는데 그 예배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에 '청종'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경청'의 자세가 먼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첫 번째로 그분의 말씀에 '불청'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행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반성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청'하지 않으며 '경청'을 기반으로 실제로 행하는 '청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해 '쉐마'는 하루에 두 번씩 암송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일종의 신앙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신명기 6장 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말하듯, 그분 또한 우리에게 '사랑'을 약속하신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의 제자로써 살아가는 각자의 삶 그 자체가 그분을 향한 '예배'가 되기를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가 이번 2022년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표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며 청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알아갈 수 있다. 사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작정하셨다. 우리는 단순히 그런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에 들여보내고 그분과 진심으로 대화하며 그분이 말씀하신 것들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청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고, 경청의 자세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청종의 자세로 순종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모습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이 약속하신 '사랑'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필자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