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 19:59ㆍHeal the World(문학)
때는 바야흐로 2016년. 필자는 처음으로 나태주 시인의 시를 접했다. 필자가 졸업한 안성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는 복도에 유명한 시의 구절이 적혀있는 특이한 풍경과 동시에 매년 가을 문학 행사를 진행하는 등 문학 작품과의 접근성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시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지 않을까 싶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나태주라는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위의 시를 모르는 사람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시다. 그렇게 처음 그를 접하였고 이후 고등학교 친구가 필자에게 나태주 시인의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를 선물해 주면서 다시금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향기를 머금은 채 세상을 찬란하게 살아가다가 군대라는 현실의 벽을 마주하면서 점점 현실적이고도 비관적으로 변해가던 찰나, '시'가 그리워 다시금 찾게 된 나태주였고 군대에서 우연찮게 그의 또 다른 시집인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접하게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이 어떠한 시집인지는 나태주 시인이 직접 밝힌 '시인의 말'에서 알 수 있다. "나(나태주)의 시 가운데에서 인터넷의 블로그나 트위터에 자주 오르내리는 시들만 모은 책입니다. (중략) 나는 한 사람 시인의 대표작을 시인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정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주옥같은 시 가운데서도 독자 가운데 유명했던 시의 모음집이라니 기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가며 인상깊었던 3편의 시를 소개한다.
초라한 고백
내가 가진 것을 주었을 때
사람들은 좋아한다
여러 개 가운데 하나를
주었을 때보다
하나 가운데 하나를 주었을 때
더욱 좋아한다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마음은
그 하나 가운데 오직 하나
부디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리지는 말아다오.
-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中 <초라한 고백>
11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中 <11월>
그런 사람으로
그 사람 하나가
세상의 전부일 때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가득하고
세상이 따뜻하고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빛나던 때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비바람 거센 날도
겁나지 않던 때 있었습니다
나도 때로 그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中 <그런 사람으로>
나태주 시인의 시는 하나같이 순수하고 서정적이다. 첫 번째 인상 깊었던 시 <초라한 고백>은 제목에서의 '초라한'이라는 표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겠지만 실상 온 맘 다한, 본인의 모든 것이기도 한 진심 어린 고백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 두 번째 <11월>에서는 낮이 짧아졌기에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필자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시간이라는 표현을 인생 석상에 비유를 하기도 했는데 부모님이 떠올라 울컥했다. 어느덧 반백 살을 넘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계시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고마운 부모님, 이제 낮(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더욱더 그대를 사랑하리라 다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시 <그런 사람으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필자의 행보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다시금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항상 누군가 필자를 만나고 나서 더욱 행복하고 희망적이게 바뀌기를, 조금이라도 더욱 나아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노력한다. 그렇기에 나태주 시인의 시 <그런 사람으로>는 필자에게 '지금까지 잘해왔어. 앞으로도 잘할 거야'라고 등을 토닥이며 응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때 단순하게 학교 복도에서 처음 접한 나태주는, 친구의 선물로 필자의 삶에 향기를 더해주었고 우울하고 비관적으로 변해가던 어둠이 가득했던 시절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었다. 위로와 사랑이 가득한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근심 걱정이 잠시나마 잊히기도 한다. 단순한 토닥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방향성도 제시해 주는 그의 시에 오늘도 필자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아름다운 단어와 표현으로 세상을 멋들어지게 그려준 그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하다는 마음을 이 글을 빌려 전하며, 나태주 시인의 책 <꽃을 보듯 너를 본다> 후기를 끝마친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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