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2022. 4. 15. 22:54Heal the World(문학)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다보니 군생활하면서 가끔씩 간부님께서 책을 권해주시는 경험을 했다. 이번에는 한 여간부님께서 본인이 선물 받았지만 아직은 읽어보지 못한 책이 있다며 필자에게 한 번 읽어보겠냐고 하셔서 읽게 된 책이 오늘 이야기를 나눌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다.

 

 <미움받을 용기> 라는 제목이 많은 이에게 익숙하리라 생각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어 어렵지 않게, 그리고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책이다. 여기서의 철학자는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청년에게 소개해주지만 그는 이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철학자에게 반박하는 방식(대화 형식의 문답법)으로 진행된다. 우선 책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알프레드 아들러란 누구인지 살펴보자.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의사였던 알프레드 아들러

 

 알프레드 아들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융과 어깨를 나란히 아는 (하지만 조금은 덜 알려진) 심리학의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인간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기에 '개인심리학'이라고 불리며 그의 이론인 '목적론'은 기존의 프로이트식 '원인론'에 맞선다. 지금은 이러한 개념이 뭔지 이해하기 어려울테니 그와 관련된 설명은 이쯤하고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책은 위에서 말했듯 아들러의 견해를 기본으로 하는 철학자와 이에 반문하는 청년의 대화로 진행되는데 총 5번의 밤(5번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으로 나뉘기에 각각의 밤, 우선은 첫 번째 밤부터 보자.

 

 

첫 번째 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프로이트의 원인론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하지만 아들러의 목적론은 사람들은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는다고 본다. 경험에 의해 무언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즉, 원인보다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 필자는 그의 주장이 인상 깊었던 것이 실제로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않은 어떤 특정한 사건(다시 말해 자의가 아닌 상태로 일어난 사건)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기에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지금의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보다 해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는 필자에게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나쁜 기억은 교훈으로'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이것 또한 특정한 사건과 기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53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일세.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63

 

2020년 What do I have라는 제목으로 필자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다뤘던 글

 

 기독교적 관점에선 우리 모두에게 재능(달란트)이 주어진다. 이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뛰어난 신체적 능력이 재능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탁월한 언어능력이 재능일 수도 있는 것처럼 분명 타고나는 것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보다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또한 그러한 활용의 과정은 우선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더불어 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들러는 무엇이 주어졌느냐(경험)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경험에 부여한 의미)가 중요하며 자신을 결정한다고 바라본다.

 

 

두 번째 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해당 챕터는 필자에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 많이 있었다. 우선 기본적으로 아들러는 모든 고민(말 그대로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 기초한다는 주장했다. 그런데 이것보다는 더욱더 와닿는 내용이 있어 이번 챕터는 이를 다루고자 한다.

 

 철학자는 한 이야기를 청년에게 해준다. 여학생이 찾아와 적면공포증(낯선 사람 또는 많은 사람 앞에 나아갈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걱정되는 신경증)이 고민이라고 밝힌다. 이에 적면공포증을 해결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여학생의 적면공포증(원인)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하여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결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들러는 남자에게 차이는 것이 두려워 핑계(이유)를 댈 수 있기 때문에 적면공포증을 고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즉, 여학생에게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 아들러의 관점을 알게 되었을 땐 충격이었다(뭐 이런 궤변이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기에 이런 관점 자체가 낯설고 새로웠으며, 때로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문득 유읽남의 책 <올바름이라는 착각>의 내용이 떠올랐다. 사회에서 도태된 약한 사람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회와 환경 등의 탓을 하며 스스로가 올바르다는 착각 가운데 산다는 내용 말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결국 이들은 부정적인 것(실패와 좌절, 슬픔 등)을 피하기 위해 원인이라고 불리는 핑계이자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전부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필자의 경우 실제로 이성에게 차이는 경험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기에 오랜 기간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인생의 과제(추후 설명할 예정)'를 회피했던 적이 있었기에 아들러의 관점이 일부는 이해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떠하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지라(용기 부여)고 조언한다.

 

용기 부여가 진정한 의미의 동기 부여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분명한 목표를 제시한다는 점 또한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서 행동이란 '자립할 것'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을 의미하고, 심리란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과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 단어 중 하나인 '인생의 과제(일의 과제 + 교우의 과제 + 사랑의 과제)'를 직시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정말 인상 깊었던 이유는 필자가 좋아하는 사람 중 한명인 조던 피터슨 또한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이란 스스로 주어진 책임을 가지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숭고한 과정이기에 피하지 말고 직시하라고 했기에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생의 과제를 인지하고 살아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 번째 밤, 타인과 과제를 버리라

 

 아들러는 과제의 분리를 강조한다. 각각의 개인에게는 '과제'가 있는데 본인이 타인의 과제를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부자유스럽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견해다. 즉, 서로의 과제를 분리하고 자신은 본인의 과제만을 신경 쓰라는 말이다.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유대교 교리에도 나와 있듯이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186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189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라 충격적이었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자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유에는 비판과 미움이 섞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확신한다. 필자가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을 눈치를 보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만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기 싫었고 본인 또한 비난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왔는데 이제는 무엇이 삶의 동기와 원동력이 되는가 하고 말이다. 목적과 동기를 잃은 삶이란 얼마나 허무했는지.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느꼈는데(그렇게 믿은 것일 가능성 또한 있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도 답답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게 살아오던 중 오늘의 책을 만난 것이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라는 명제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가면 갈수록 소름이 돋는다. 결국 필자 또한 타인의 과제에 길들어져 부자유스럽고 행복하지 않은,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고 깨달았다. 또한 행복해지기 위해선 '미움받을 용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듯 이러한 용기가 생겼을 때,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관계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보다 더 단순하고 희망적이며 행복하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철학자의 말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역설적으로 미움받을 용기와 미움을 받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었던 챕터였다.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 대화에서는 '공동체 감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인데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소속감이란 우리가 가만히 있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적극적인 공헌이란 인생의 과제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일세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216

 

 그러면서 우리는 살면서 더욱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춰 들으라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교사가 절대적인 권력자라고 한들, '인간 사회'라는 공동체로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인간'일 뿐 교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면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해도 상관이 없다. 이는 공동체 감각을 가지되 자유를 택하고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집착하지 말게. 보다 다른 '나와 너' 보다 다양한 '사람들', 보다 큰 공동체는 반드시 존재하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223

 

 아들러의 관점을 계속 살피다 보면 '용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으로 용기 부여를 얘기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해야 인간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는 마련이다. 이에 철학자는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고 말한다. 청년은 이어서 공동체에 유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치매에 걸리신 자기 할아버지는 가치가 없냐고 반문한다.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타인이 무엇을 했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존재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 내용이 너무나도 와닿았던 것은 청년의 질문이 필자가 가진 의문과 상당히 흡사했기 때문이었으며 철학자의 말에 동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자와는 다르게 공부에 전혀 뜻이 없고 매번 부모님의 귀한 돈만 용돈으로 쓰기만 하는, 다시 말해 행위의 측면에서 답답하고 화가 나는 동생이 있다. 물론 평소에는 잘 지내지만 '행위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답답하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그런 동생이 어느 날 꿈에 나온 적이 있었다. 화목하게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사고를 당해 가족의 분위기가 침울해지는 내용이었는데 꿈속에서 필자는 스스로 말했다. 동생이 다시 살아난다면, 동생이 살아있었을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해주면서 잘 해주었을 터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꿈에서 깨었고 침대에 누워 펑펑 울고 있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필자는 행위의 측면이 아닌 존재의 측면에서 동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예전의 경험이 떠올라 위 내용이 상당히 인상 깊었던 것 같다.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생이란 선의 인생이 아니라 점의 연속이기 때문에 말이다. 여기서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운동'의 키네시스적 인생과 '실현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소개한다. 에네르게이아적 운동은 지금 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된 운동으로, '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께서 항상 강조해주셨던 Here and Now정신

 

 에네르게이아적 운동의 인생을 춤을 추는 것에 비유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춰 과정 자체가 실현된 상태를 의미하는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에 대해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는 향락적인 태도라고 비판하는 청년에게 스포트라이트 비유를 했던 것이 정말 인상 깊었다. 우리가 극장 무대에 섰다고 상상했을 때 불을 켜면 객석 구석구석 다 보이지만 우리에게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앞줄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철학자는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게 되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308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라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313

 

 철학자는 인생 최대의 거짓말로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의 말에 필자는 정곡이 찔렸다. 20살이 되어 대학교에 입학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을 돌이켜봤다. 늘 과거만을 그리워하며,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왔던 필자였기에 항상 후회가 남았었다. 과거에 무엇을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지금, 여기'를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다면 또다시 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과거는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기에 과거대로 의미가 있고,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오늘 하루에 집중하고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었던 조언이었다.

 

 청년은 마지막으로 철학자에게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철학자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했던 질문이다. 우리 모두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인생은 태어났기에 살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선사해줬던 아들러가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던 찰나 철학자가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란 없다'고 답했다고 말한다. 잠시만, 인생의 의미란 없다니 너무 허무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엄청난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 원인론에 입각하여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고 과거를 돌아보며 따져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우리는 곤경에 처했을 때야말로 앞을 보며 "이제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p315

 

 역시나 이렇게 단순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러의 관점은 원인론에 따라 특정한 사건이 준 경험에 대해 '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봤자 의미가 없다며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물으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어서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으나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는 우리가 찾고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과연 필자는 자신에게 어떠한 인생의 의미를 부여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인 책, <미움받을 용기>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개인 심리학, 용기 심리학, 사용 심리학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 앞으로 그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공부하고 알아보리라 결심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인론'과 대비되는 '목적론'이라는 관점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아들러의 가르침은 가슴속 깊이 새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화의 기도'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유명한 기도문, 평화의 기도

 

 평화의 기도가 <미움받을 용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은 우리에게 주어진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또는 현재의 경험을 일컫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은 주어진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인상 깊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둘 다 '용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평화의 기도'에서는 더 나아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현실을 직시하라는 <미움받을 용기>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유명한 책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간부님께 추천받아 읽은 책이,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따랐던 기존의 관점(세계관)과 가치관에 도전을 주었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근본부터 흔드는 책'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 등이 달라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알프레드 아들러를 접하고 그의 이론을 흥미롭고 쉽게 다룬 <미움받을 용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에 기반하여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미움받을 용기와 함께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

 

 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