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4. 09:31ㆍHeal the World(문학)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
한창 넷플릭스에서 세계 1위 드라마를 찍으며 고공행진을 하던 오징어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 우리나라의 건축가 유현준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에서 한 영상을 보았다. ‘오징어 게임 속 돼지저금통의 비밀은?’이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그가 오징어 게임을 리뷰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 속 진행요원과 참가자의 옷 색깔을 보색(빨간색과 녹색)으로 설정한 이유, 돼지저금통을 천장에 노르스름한 색깔로 만든 이유 등 오징어 게임을 색다르게 해석해볼 수 있는 유현준의 관점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공간’의 측면에서 해석한 오징어 게임이다. 그는 오징어 게임 예고편을 보면서 미로와도 같은 계단실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이 드라마를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드라마 속 계단실을 보면 계속 90도로 꺾이고 등장인물들이 걷는 계단의 좌우는 벽으로 막혀있다. 이렇게 설정한 이유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과 의례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본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공포감 형성을 위해 방향 감각의 상실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타인의 경험을 통제하는 것이고 이러한 통제성이 강해질수록 권위는 상승한다. 이렇게 유현준은 본인의 채널 영상을 통해 <오징어 게임>을 해석하는데 그가 해석한 방법 중 공간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 정말 인상 깊었다. 자연스레 유현준과 건축, 그리고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읽게 된 책이 바로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부제는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으로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등 15가지의 시선으로 건축의 과거와 현재를 톺아보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단순히 이론적으로 건축에 대해서 접근했더라면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작가는 중간중간에 흥미로운 건축물들과 창의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어느 하나 놓칠 것 없이 유익함과 재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나온다. 성 베드로 성당, 루브르 박물관, 한옥과 정자들,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 등등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현준 건축가 또한 굉장히 좋아하는 건축물로써 그것은 바로 베트남 전쟁 기념관이다. 베트남 전쟁은 사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패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초로 패배한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들과 실종된 약 58,000명을 위한 기념관을 쉽사리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어려워 현상 설계로 공모되었는데 당시 예일대학교를 다니던 21세의 마야 린이라는 사람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기념관이 지어질 곳은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기념관 사이에 위치하였기에 두 자랑스러운 대통령 가운데 어쩌면 치욕스러운 패전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 역사의 치부와도 같았던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전이었기에 승전비처럼 건설할 수는 없어 수직적인 기념비가 아니라 땅에 새겨진 하나의 상처와도 같은 기념비를 지었다. 환경적 제약 가운데서도 그녀는 도전하였고 베트남(Vietnam)의 V의 모양으로 땅을 깎아 옹벽처럼 생겨난 벽에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각각의 끝은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기념관을 향하게 하였다.
실제로 해당 건축물을 보면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게 되는데 어느 순간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벽이 본인의 키보다도 커져 있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더군다나 건축가는 벽의 표면을 물갈기로 처리하여 빛이 반사되게 만들어 관람객이 전사자의 이름을 보며 자신 또한 비춰 보일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그들(전사자)을 통해 지금의 자기가 이곳에 있을 수 있고 현재 살아있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상기시켜주는 효과를 지녔다.
이에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이 떠올랐다. 윤동주는 본인의 시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라는 구절을 통해 온몸을 바쳐 자신을 바라보겠다는 자아 성찰의 의지가 담겨있는 표현이다. 베트남 기념관의 벽에 반사되는 관람객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밤이면 밤마다 거울을 닦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겠다는 윤동주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기념관을 빠져나오면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기념관 같은 미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정신을 기록한 건축물에 다다르게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승전결의 건축물이자 체험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 기념관은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기억을 최소한의 건축적 장치를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주변 컨텍스트를 이용하여 기가 막힌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기념관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p158
위와 같이 평한 유현준 건축가의 말처럼 베트남 기념관을 보며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기존에 ‘건축’하면 가지고 있었던 저부가가치의 산업이라는 인식이라는 오해, 훌륭한 건축물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의미 또한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건축이라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짓는 행위와 어느 한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만한 체험을 가능케 해준다는 것까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유현준 건축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여러 인상 깊은 문장들이 있었는데 그중 그가 책을 끝마치며 독자들에게 해줬던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다 건축가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일종의 건축주다. (중략) 훌륭한 건축은 결국 훌륭한 건축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훌륭한 건축주가 되는 첫걸음은 관심을 가지고 건축적으로 주변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러분 모두가 이 나라의 건축을 더욱 발전시킬 훌륭한 건축주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려 한다.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p383
건축에 문외한이었으나 유현준 건축가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건축과 공간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흥미로운 관점을 통해 건축물을 바라보면 귀한 체험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서도 또한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좁은 공간이기에 앞으로 건축의 미래와 방향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은데, “제약은 언제나 더 큰 감동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어 멋진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건축에 국한되지 말고 우리 또한 제약을 아름답게 이겨내어 더욱더 찬란하고도 감동적인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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